소개
1985년 발간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해당 소설은 제 13회 세계 환상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국내에 원작 소설이 번역되어 발간됐을 때, 우연히 신문에서 발간 광고를 하는 것을 보고 저는 책을 먼저 접하고 이후에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책도 굉장히 흥미진진 했지만 내용의 전반이 향기에 대해 말하는데 그것을 구체적으로 시각화하여 구현했다는 점에서 영화도 상당히 흥미로워 5번 이상 감상한 작품입니다. 개인적인 프로젝트의 포트폴리오에도 해당 작품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 있을 정도로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평가가 갈리는 부분이 있기도하지만 개인적으로 상당히 잘 만든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이지만 내용이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고, 영화로 재창조하는 과정에서 일부분 각색되어 소설과는 꽤 다른 내용을 다루고 있기도 합니다. 톰 티크베어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벤 위쇼가 주인공인 바티스트 그루누이역을 맡아서 연기했습니다. 후에도 다루겠지만 대사가 거의 없는 바티스트를 연기하는 벤 위쇼의 연기력이 어마어마합니다. 그리고 알란 릭맨, 더스틴 호프만 등 쟁쟁한 배우들이 곳곳에서 본인의 몫을 훌륭히 소화해주어서 감정적 고조가 많지 않음에도 굉장히 영화가 밀도있다는 생각이 들게끔 합니다.
줄거리
장바스트 그루누이는 18세기 파리의 어시장에서 생선장수 였던 어머니 밑에서 태어납니다. 다른 형제들은 대부분 사산아이거나 태어나자마자 방치되어 죽었지만, 그루누이는 악조건 속에서 기어이 울음으로 탄생을 알리고 살아납니다. 아이를 유기하려했던 그의 어미는 그 울음소리에 의해 사형에 처하게되고, 그루누이는 13세까지 고아원에서 자라게 됩니다. 말이 늦은 그였지만 후각에 있어서는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났습니다. 그루누이는 말과 글 또는 경험이 아니라 후각에 의존하여 세상을 알아갑니다. 13세가 되자 고아원에 더 이상 자리가 없어 그루누이는 무두장이에게 팔려가서 일을 하면서 살게 됩니다. 가죽 배달을 하며 우연히 만난 소녀의 향기에 매료되어 그녀를 따라갔으나 그의 의도와 관계없이 그녀를 살해하게 되고, 그녀에게서 생기가 사라지자 그녀의 향기 또한 흩어지는 것에 그루누이는 크게 상심을 느끼게 됩니다. 그 이후로 그루누이는 향기를 보관하는 것에 집착하게 되고 우연한 기회를 거쳐 한물 간 이탈리아 출신의 향수 제조업자 “발디니”의 제자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루누이는 발디니 아래에서 향수를 제대로 배우게 되면서 12가지 향기를 조합하여 향수를 만드는 법에 대하여 배우게 되고, 13번째 향에 대한 이집트의 전설도 듣게 됩니다. 그리고 그가 그토록 염원했던 향기를 추출하여 남기는 법에 대해 배우게 됩니다. 그 방법으로 장미의 에센스는 추출할 수 있었지만 사람의 체취를 추출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루누이는 더욱더 향기를 채집하는 것에 대해 집착하며 향수의 고장 “그라스”로 떠나게 되고, 문득 그루누이는 자신에게 그 어떤 체취도 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사람이라면 응당 나야되는 체취가 그에게는 전혀 나지않자 그는 완벽한 향수를 만드는 것에 대해 더 집착하게 됩니다. “그라스”로 가는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로라에게서 황홀한 향을 맡은 그루누이는 본능에 이끌려 로라를 따라가게 됩니다. 언젠가 로라의 향을 가지리라 다짐한 그루누이는 “그라스”에서 향수 기술일을 하게되며 냉침법에 대해 알게되고, 그 기술로 사람의 체취를 추출하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그 순간부터 그루누이는 좋은 향기를 가진 순결한 여성들을 무차별적으로 살인하여 전설의 향수를 만들기 위해 향을 수집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정점의 13번째 향을 수집하기 위해 결국 로라까지 죽이게되고 마침내 전설속의 향수를 완성해내지만, 지속적으로 일어난 살인을 수사해오던 지도자들에게 잡히게되고 사형을 선고받습니다. 사형집행 당일, 성난 군중들이 그루누이의 형 집행을 보려고 몰려들었고, 그들 앞에 서게 된 그루누이는 완성한 향수를 뿌리고 군중 앞에 섰습니다. 그 향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군중은 그를 신처럼 떠받들고 그 광장엔 어떠한 비난과 질타도 없이 사랑만 가득하게 되어 난교가 벌어집니다. 그 틈을 타 그루누이는 그 곳에서 벗어나 자신이 태어난 파리의 시장으로 향했고, 그 곳에서 남은 향수 전부를 자신에게 붓습니다. 그러자 그 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홀린 듯이 그루누이에게 달려들어 그를 먹어치우고 그루누이는 흔적도 없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감상
영화를 보면서 그루누이의 맹목적인 향기에 대한 집착은 본질적으로 본인의 자아, 존재가치와 연결돼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스스로 자신의 체취가 없다는 것을 인식하였을 때, 본인이 인간으로서 존재하고 있는가에 대해 많은 갈등을 겪은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쏟아지는 폭우에 본인의 몸을 씻고 계속해서 본인의 체취를 확인하며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음에 괴로워하는 장면으로 그의 심정을 유추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비단 본인 스스로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 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계 안에서 타인에게 어떻게 존재하느냐의 문제 또한 연결되어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루누이가 살아가는 과정을 보면 사회적 관계에 대해 전혀 염두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나, 사실은 본인도 한 인간으로써 존재하고 싶은 욕망이 있기에 인간의 체취를 수집하는 것에 대해 집착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실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그 스스로가 본인의 존재가 늘 타인에게 희미했음을 은연중에 인식해왔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타인으로부터의 사랑에 대한 갈망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사형집행장에서 자신을 경배하는 군중을 보며 처음 향기에 끌려 따라갔던 소녀를 따뜻하게 안아보는 상상을 하는 그의 모습이 그것을 반영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결국 그루누이는 향수를 통해 본인의 체취처럼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이 기괴한 이야기가 왜 이렇게도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향기를 감각적인 비쥬얼로 풀어낸 향수, 여러분께 추천합니다.